
초안만 몇 번째인가요
결혼식 축사 작성, 초안을 세 번째 갈아엎고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처음엔 인터넷에서 예시를 찾아봅니다. 참고해서 써보는데, 읽어보면 내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이번엔 내 마음대로 써보는데, 읽어보면 너무 두서가 없습니다. 또 지웁니다.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초안만 쌓여갑니다.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되는 겁니다.
오늘은 비슷한 상황에서 축사를 준비하신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A씨 이야기 — 직접 쓰다 막힌 경우
A씨는 아들의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축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글을 쓸 일이 없던 분이라, 인터넷에서 예시를 여러 개 찾아 참고했습니다.
문제는 예시를 조합해서 쓰다 보니, 읽었을 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아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넣으려고 해도, 어떤 이야기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고, 고르고 나서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고치면 고칠수록 오히려 더 어색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당일 메모만 들고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막상 읽으려니 앞뒤가 안 맞아서 중간에 말을 바꾸셨고, 끝나고 나서 "좀 더 준비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오래 남으셨다고 하더군요.

B씨 이야기 — 마음을 나누고 정리한 경우
B씨는 딸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아버지였습니다. 역시 직접 쓰려고 했지만, 며칠을 붙잡고 있어도 첫 문단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B씨가 선택한 방법은, 딸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편하게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어땠는지,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는지, 딸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지. 말로 풀어놓으니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축사가 정리되었고, 당일 B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지만 하객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특히 딸이 울면서 안아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B씨 본인도 울컥하셨다고 합니다. B씨가 나중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쓴 게 아니라, 내가 한 이야기를 누군가 글로 옮겨준 느낌이었다.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두 분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A씨와 B씨의 차이는 글쓰기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A씨는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B씨는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냈기 때문에 글이 만들어진 겁니다.
축사의 핵심은 문장력이 아닙니다. 자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부모만 할 수 있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이야기가 나오면, 글로 정리하는 건 그다음 문제입니다. 인터넷 예시를 아무리 잘 조합해도, 내 자녀의 실제 에피소드가 없으면 진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먼저 이야기를 꺼내보세요. 글은 그 다음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떨려도, 중간에 멈춰도, 눈물이 나도 괜찮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직접 입을 열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최고의 축사입니다. 하객들은 완벽한 문장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진심을 듣고 싶은 겁니다.
소리 내어 두세 번 연습해두시면 당일 떨림이 훨씬 줄어듭니다. 가족 앞에서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 한 잔 준비해두시면 중간에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혼자 준비하기 막막하시다면
자녀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할 말이 참 많으신데, 그걸 몇 분짜리 축사로 정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에피소드를 넣고 싶으신지, 자녀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지를 편하게 들려주시면, 소중한 자리에서 제대로 된 말을 전할 수 있도록 함께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눠보세요.
축사 원고, 받아보신 분들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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